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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90개가 책상 위에 빼곡히 놓였습니다.
평소 같았다면 SNS 홍보용으로 올렸을 사진입니다.
이 도시락, 아무도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육군 37사단 이 중위입니다"지난 4월 7일 저녁 8시가 넘은 시각, 매장으로 육군 장병들이 먹을 도시락이 필요하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자신을 육군 37사단 소속 이 모 중위라고 소개했습니다.
남성은 1만 5천 원짜리 도시락 90개를 다음 날 오후 5시 반 만기일치형 만기자유형 에 가져갈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김 모 씨 피해 도시락집 사장 "시간이 빠듯하니 늦게까지 장을 보고, 다음날은 새벽에 출근했어요. 직원도 셋이나 더 불렀죠.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거든요. 국군 장병들이 드신다고 하니까 더 챙겨주자 싶어서 1만 7천 원 구성을 1만 5천 원으로 해드렸어요."
대구에서 수제 도시락집을 워크넷취업알선 운영한 지 5년째.
이런 관공서의 단체 주문도, 도시락을 가지러 오면서 결제를 하는 일도 흔했습니다.
8일 아침부터 남성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준비가 잘 되고 있냐며 묻더니, 결제 확약서를 보내줬습니다.
그러고는 음료도 같이 달라며 구매 요청서를 보내왔습니다.
다함께 정기적금 공문에는 모두 37사단의 마크와 이 중위의 연락처, 대대장의 직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결제 확약서에는 "위 문서를 임의로 사용하거나 전달하는 경우 부득이하게 법적 절차를 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리는바"라는 경고 문구도 적혀 있습니다.
김 모 씨 피해 도시락집 사장 "처음에는 전혀 의심을 할 수 없었어요. 그분의 말투도 과대출자추가대출 그렇고 공문서에 직인도 찍혀 있지, 자기 이름과 사진이 있는 공무원증까지 보내주니까요."



"군대라고 가격 올리는 전투식량 업체···대리구매 해 주세요"꺼림칙하기 시작했던 건 이 중위가 전투식량 대리구매를 요구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 중위는 "추가로 훈련용 전투식 햇살론 저축은행 량 주문 명령이 떨어졌다"며 운을 뗐습니다.
"군대라는 이유로 공장에서 가격을 올리고 있다"며 "첫 주문은 저렴하니 사장님이 공장에 직접 전화해 대신 주문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공무원증을 보내주고, 직접 도시락을 가지러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중위는 전화로도 설득한 뒤 전투식량 업체 명함을 전해줬습니다.
실제 전투식량과 건빵 등으로 이름난 업체였습니다.
김 모 씨 피해 도시락집 사장 "도시락 만들기도 바쁜데 전화에 문자가 계속 왔어요. 음료도 추가로 해달라고 하지, 정신없는 와중에 이 중위가 대리구매를 부탁했던 거예요. 14만 원에서 16만 원이라고 해서 일단 알겠다고 했어요. 군대라고 하니까 믿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김 모 씨는 명함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업체가 요구한 금액은 1천2백만 원.
이 중위가 말했던 돈은 한 개당 가격이었던 겁니다.
자신을 전투식량 업체 대표라고 말한 남성은 사업자 번호, 상호, 받을 주소, 도착 시간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계좌 이체할 거냐 묻고, 개인 명의의 계좌번호와 결제 금액을 알려줬습니다.
김 모 씨 피해 도시락집 사장 "그때 남편한테 전화했어요. 딱 보이스피싱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도시락을 만들어놨으니 어떻게든 매장에 오게 하려고 전화를 계속했어요. 결국 나타나지 않았지만···"
금액이 커서 1천2백만 원을 다 입금할 수 없다고 하자, 이들은 예약금을 걸어달라고 했습니다.
전투식량 사칭 업체 "사정은 이해하는데 사실 저희가 그것까지 생각할 건 아니잖아요. 일단 있는 거라도 예약금을 걸어주시면 해드린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도시락을 가져가기로 한 5시가 넘어도, 아무도 매장을 찾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김 모 씨 피해 도시락집 사장 "남편이 전화하니까 긴급 작전 명령이 내려와서 자기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라고···"
정성 들여 만든 도시락은 사정을 안 지인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사 갔습니다.



사칭 당한 전투식량 업체도 황당···이 중위는 지금도사칭을 당한 전투식량 업체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업체에는 피해자들의 문의 전화가 잇따릅니다.
이렇게 전투식량을 팔기도 하냐는 겁니다.
남호정 전투식량 제조업체 대표 "최근 들어 이런 전화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저희는 군인과 일반인을 상대로 건빵과 전투식량을 팔지만, 지금까지 제삼자를 통해서 단 한 번도 거래 판매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회사 명의의 계좌지 개인 명의로 돈을 절대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입금을 미뤄놓고 업체로 전화부터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전국에서 신고된 피해 건수는 386건, 피해 금액은 53억 원가량입니다.
경찰은 이들이 정교한 대본을 가지고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김 모 씨 피해 도시락집 사장 "주문한 사람이랑 업체랑 성향이 굉장히 달랐어요. 군인이라는 사람은 '사장님 주문됩니까?' 이렇게 하는데 업체는 강하게, 화를 내면서 '입금해야지 물품을 보내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이에요."
이런 접근 방식 역시 짜인 각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찰은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는 조직범죄로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군 당국은 자영업자에게 공문을 보내거나 대금을 대신 내달라고 요청하지 않는다며 주의를 요청했습니다.
군부대에서 대량 주문이 들어왔다면 우선 소속과 부대 이름을 확인하고, 부대의 대표 번호로 연락해 실제로 주문을 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군부대와 교도소 등을 사칭한 범죄,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
대구와 경북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가 빗발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김 모 씨 피해 도시락집 사장 "그 사람들도 저희가 눈치챘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근데 전화를 받고 또 받아요. 다른 전화번호로 걸면 받고. 그 상황에서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이 중위는 자신의 SNS 프로필을 바꿨습니다.
바뀐 그의 프로필 문구는 '국가와 사회에 충성!'입니다.